CoC 7th 시나리오 < PART OF YOUr world; > 의 전반적인 내용 및 엔딩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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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는 메리 셀레스트 호처럼 사라졌다.
사실 완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아니다. 메리 셀레스트 호가 그랬듯.
종려의 흔적은 곳곳에 남았다. 미처 치우지 못한 연구실, 소와 감우가 가지고 있는 선물들, 국립 연구소 부지에서 사라진 바닷가 연구소, 그런 것들. 종려는 무서울 정도로 국립 중앙 연구소에서 차근차근 제 흔적을 지웠다. 이내 중앙 연구소에 남은 흔적이 소와 감우가 가진 만년필뿐이 되었을 때 종려의 흔적은 사라졌다. 비가 내렸다.
종려는 파랗게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봤다. 벤티가 포말에 잠겨 사라지던 바다다. 연구소 부지 근처의 바다는 매일 조용하고 큰 변화가 없는 곳이었으나 유독 벤티가 왔던 그 계절만큼은 파도가 거셌다. 그런 날에 종려는 한참 바다를 바라보면서 하얗게 흩어지는 거품을 바라보다 발을 돌렸다. 파도 소리가 종려의 발끝마다 귀신처럼 달라붙었다.
벤티는 종려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갔다. 바닷물이 남은 수조, 동화책과 소파와 복도 곳곳에 남은 염분, 총탄 자국이 남은 방, 작은 유리병에 들어간 진주, 종려의 옆구리에 남은 큰 흉터에 조금만 더 베였으면 장이며 혈관이 다 터질 뻔 했다고, 이 상처를 가지고 도대체 왜 이제 왔냐 하던 의사의 질문까지. 모든 흔적을 지운 종려와 달리 벤티는 모든 흔적을 남겼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선 바다와 닮았다. 모든 것을 쓸어가고 모든 것을 남기는 격랑이란 점에서.
국립 중앙 연구소의 사람들은 공무원이긴 했다. 좌천되었어도 어쨌든 연구소 소속이었던 종려도 공무원 연금을 받았다. 그렇다고 남은 일생을 평생 공무원 연금으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종려는 차로 20분은 달려야 하는 작은 마을에서 선생 일을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은 순박했고 온순했으며 호기심이 많았다. 그런 것은 연구원의 자질 중 하나였다. 종려는 어린 아이 열댓 명을 이끌고 다니며 바다와 그 속에 사는 수많은 신비로운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전설을 이야기했다. 작은 마을의 모닥불 야담 중 가장 주요한 화제로 종려가 떠오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그를 수상하게 봤다. 쇠락해가는 마을에 나타난 외지인, 아이들을 가르치고 돈을 받아가지만 마을에서 머물지는 않는 자. 마을의 일을 도와주지만 바다에만 관심이 있는 자. 초로의 노인들은 그가 바다에 홀렸다고 이야기했다. 종려는 부정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는 가끔 메리 셀레스트 호를 뒤쫓는 선원처럼 종려를 찾아오고는 했다. 이번에 새로 맡게 된 연구 프로젝트의 주제라던가 이름이라던가, 연구소의 근황과 감우의 안녕을 전해주고는 했다. 소는 바람의 방향에 민감한 자였다. 손끝으로 공기의 흐름을 느끼는 이였기에 종려는 소에게 얼마나 큰 바람이 불어야 해류의 방향이 바뀔 지 물어보았다. 소는 그 질문을 가만 듣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종려는 매일 해도를 펼쳤다. 일대의 해류와 그것을 일부분으로 가진 거대한 대양의 물결을 손으로 훑으며 알 수 없는 오래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오늘은 여기 있을 거고 내일은 떠날 거예요, 그리고 골웨이로 떠날 거예요 춤바람이 마을을 휩쓴 후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Celtic Woman, Teir Abhaile Riu) 흰 손가락이 해도의 위를 쓸어내리고 나면 노래가 끝나있고는 했다.
"…… 세실리아네요."
"무언지 아는 거니."
"예, 이전 감우가 조사하던 지역의…… 꽃입니다. 여기서 꽤 멀리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나는 꽃입니다만."
"…… 거기로 가는 해류가 있을까?"
"대서양 해류는 지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벤티가 사라진 바위에는 꽃이 남았다. 세실리아, 풍차국화, 종려가 모르는 여러 들꽃하며 야생화들이 회색 해안을 수놓았다. 그런 날에 종려는 다시 해도를 펼쳤다. 해역의 물결과 바람을 보고 벤티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곤 바다를 본다. 그들은 여즉 바다에 있다.
계약은 상호간의 신뢰와 신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계약을 맺었다. 인간에 대해 알려준다면 인어에 대해 알려달라는,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한 계약. 상호 신뢰는 없는 구두 계약이었다. 당연히 효용성도 없다. 벤티가 그런 것들을 알았을 리는 만무하겠다만(정말로? 종려는 이 부분에서 잠시 고민을 거듭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마저 헛으로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의 유효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지.
차라리 모든 것이 메리 셀레스트 호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육체의 껍데기만 남긴 채 영혼하며 기억하며 추상적이고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모조리 저 격랑에 쓸려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거대한 대양에서 홀로 유유히 표류하다 가라앉는 것이다. 깊게, 더 깊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인어를 매번 꽃이 수놓인 바위 옆에서 기다리는 것은 질긴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효용성도 없는, 보증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 계약도 약속도 되지 못하는 것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다. 다만 종려는 매번 바다로 나갔다. 매일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신발을 적시고 물러나는 포말을 보다 발을 돌린다.
"…… 음, 그래. 나는 괜찮으니 이리 안부 인사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요. 괜찮으신 거 맞으시죠?
"그렇대도. … 그래, 감우야. 내 하나만 물어보아도 되겠니."
-네, 종려님.
"조개의 진주는 조개의 신체 일부로 판정할 수 있을까?"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조개의 체액이 굳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조개껍질 안에서 발견되기도 하고요.
허면 인어의 진주도 인어의 일부가 될까.
종려는 유리병을 뒤집었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은 하얀 진주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손바닥 위를 구른다. 종려는 그것을 가만 내려다본다. 기약 없는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차라리 흔적을 지워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종려는 이것이 비이성적이고 쓸모없는 짓임을 잘 안다. 종려가 미처 지우지 못한 흔적 중 슬퍼할 이들이 많은 것도 안다. 이것을 집어삼켜서 슬퍼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이 쓸려갔을 뿐이다.
외로움은 많은 것을 지운다. 총탄 자국이 남았던 방의 벽은 새로 도배를 했고 소파며 책, 가운에 남은 염분기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옆구리에 남았던 흉은 연해져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고 물을 들인지 오래 된 수조에는 녹이 슬었다. 벤티의 흔적은 하나하나 외로움에 밀려 사라졌다. 그것마저 바다에 사는 이를 닮았다고 종려는 자조했다. 하얀 진주가 빛을 반사해 탁하게 빛난다. 종려는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기꺼운 몰락이었노라고 평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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